라스트마일(Last-Mile) : 물건이 최종적으로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단계.
무슨 뜻인지 모르고 보러 갔는데 안 그래도 영화에서 친절하게 설명해주더라… 유통 단계의 최후반, 택배 중개사와 물류사를 거쳐 현관문 앞에 놓이기까지의 단계.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인상 깊게 느껴지는 네이밍이라고 생각했다. 고객에게 전달하고 나면 완료되는 라스트 마일이 연쇄 폭탄 테러 사건 탓에 끝나지 않고 나흘간 쭉 이어졌으니까…
노기 아키코씨 특유의 치밀하면서도 친절한 스토리 설계와 복선 회수에 감탄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진상이 규명되기 직전 내가 추측한 것이 얼추 들어맞는 경험이 이어지니 더 집중 잘 되고 재밌었던 것 같다. 언내랑 미우 볼 때도 느낀 건데 시청자에게 함께 추리하며 풀어나갈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내가 일드를 많이 안 봐서 우물 안 개구리 식 사고를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 이것 저것 많았는데 제일 쾌감있었던 부분은
클라이맥스 부분, 집 안에서 폭발하는 마지막 택배를 와타루가 세탁실 안으로 들고 뛰어들어갈 때. 세탁기 모양을 1초 정도 보여주길래 어! 설마! 했는데 정말로, 내열 설계가 잘 된 세탁기 회사에 다녔다던 그의 대사가 스쳐 지나가며 이어지는 결말에 입을 틀어막았다… 대사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아서 좋아. 2회차를 영화관에서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 ━┳━
129분이면 생각보다 긴 것 같아서 영화 보면서 중간중간 시간 체크해가며 봤다. 그래서 좋았던 거 : 초반의 엘레나를 굉장히 의심스럽고 사측처럼 그려 두었는데, 러닝타임 1시간 반 정도가 지난 시점에서 엘레나가 기폭 장치의 스위치를 누르고,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 그의 진면모가 드러나며 후반 전개가 달라지는 점이 좋았음. 누구보다도 사측처럼 그려졌던 엘레나도 사실은 자본주의의 구조 아래 놓여 착취당한 대기업의 부품일 뿐이었다는 점이, 엘레나가 눈물 흘리는 장면들에서 절절하게 와 닿아서 심란했다. 일본 지부에 센터장으로 발령난 것도 본사 측 사라가 민원 메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엘레나에게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은 채 보낸 것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리고 야마사키의 죽음에도 제때 실현되지 못했던 캐비닛의 공식도, 뒤늦게 야마사키의 죽음에 씁쓸한 표정을 짓던 이가라시도.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감을 곱씹게 되는 장면이 많았다. 미국 본사 측이 흑막처럼 되어버리며 작금의 트럼프 관세전쟁 사태를 떠올리게 된 것까지 블랙코미디의 완성인 것 같아서 웃프다… 한국에만 늦게 개봉했을 뿐이지 작년 영화인데도.
데일리 패스트의 오렌지색과 엘레나의 착장에서 늘 포인트 컬러로 들어가는 오렌지색이 일맥상통하는 것 같아서 좋았음. 이건 2회차를 해야 더 깊은 감상을 남길 수 있을 것 같다. 외에도 러닝타임 내내 강박적으로 돌아가는 컨테이너 벨트 효과음이라던가… 사운드 연출이 좋았던 듯. 언내추럴 파트에는 언내추럴의 총알 떨어지는 효과음, 미우 파트에는 뭐더라… 아무튼 각 드라마 키사운드와 배경음악이 불쑥 튀어나와서 어!!!! 하고 반가운 마음이 들게 되는 것도 좋았음.
픽션은 픽션. 사회고발 드라마라도 판타지는 판타지. 결국 4일간의 연쇄 택배 테러 사건은 하청업체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 극적인 협상 성공으로 잘 마무리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주 7일제를 시작한 CJ대한통운과 쿠팡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당장 한국에서는 파업하면 욕먹는 건 노동자고, 협상이 된다 해도 누구 코에 붙이나 싶을 정도인데… 그래서 영화에서도 일련의 사건이 잘 마무리된 뒤에, 밤 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고 분주히 돌아가는 도심의 모습을 익스트림 샷으로 의미심장하게 넣는다. 결국 현실은 변하지 않는단 뜻일까? 그래서 마음이 더 안 좋았을 지도…
마지막 폭탄이 도착한 집의 무인우편함 패스워드가 404인게, 나는 미우의 404를 암시함과 동시에 'not found' 라는 의미니까 찾지 못하고 놓쳐 버린 마지막 택배… 뭐 그런 의미인 줄 알았는데 누가 해석해준 트윗을 보고 좋아서 입 틀어막음. 아래 인용 LINK
'부재중'인 집의 호수가 404호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마지막 폭탄이 있던 곳도 404호
더이상 고칠 부품도 없어 고물이 된, 그러나 여전히 누군가는 아껴주며 사용하는 세탁기(>여기저기서 좌천 당한 애물단지이지만 여전히 형사인 욘마루욘)가 구한 생명-
그리고 또 트위터에서 인상깊었던 후기를 백업해둔다 LINK
라스트마일에서 진짜 깊게 남았던건 약혼자때문에 죽기를 선택한 카케이마리카를 두고
나카도는 대단한 근성이라고 했고
미코토는 그런 근성이라면 없는게 낫다
라고 한 대사가 너무 언내추럴의 메인스토리라인을 관통했다고 생각들어서 좋았음
이렇게 길게 쓸 생각 없었는데… 재밌게 봤나 보다. 내려가기 전에 극장에서 2회차를 할 수 있길…